[14]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일촌이었다' 소셜네트워크개론 해리요셉과 비밀의 [웹]


* 본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과 생각이므로 zum.com 또는 이스트소프트의 공식적인 입장과 의견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오해하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오랜만에 쓰는 블로그네요. 게으름과 바쁨을 핑계로 거의 3달만에 쓰는 블로그다 보니 은근히 떨리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내용이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손을 댑니다. 앞으로는 1달에 하나의 article은 쓰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새해 결심처럼 반복되는 결심들 : 이제 새해에 뭘 결심했는지 생각도 안남. -_->

 영화 건축학개론이 지난 5월 18일 전국 관객 40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역대 멜로로는 단연 1위라고 하네요. (이전 기록은 2006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313만명) 한국에서는 멜로가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거스른 2012년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합니다. 맞붙은 영화들이 어벤저스라는 블록버스터부터 시작해서 간기남, 은교 등 노출을 동반한(?) 영화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 성적이 가지는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첫사랑 때문은 아니고..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때문이었어요. 사실 이 영화가 91, 92학번의 시간을 기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이제 전람회와 김동률의 노래도 역사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감개무량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기억의 습작이 되면 안돼요 동률님>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는 그래서 바로 '공감'입니다. 그 이유는 영화를 안 보신 분은 한번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안 보신 분도 이 블로그 내용을 보기 전에, 영화의 핵심 PR이었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한번쯤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절대 동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첫사랑이었던' 분보다 '첫사랑이 있었다'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OTL) 인류 모두에게 '첫사랑'은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누구나 첫사랑에 대해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감정적 공감에서 출발했고 그 감정선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강의실에서의 첫 만남, 좋아하는 음악 같이 듣기, 그녀가 그린 미래에 살고 싶은 집 등등..
<악! 그 짐승 같은 입술을 당장 떼지 못할까!> (출처 : 건축학개론 영화 중)

  이런 장치, 어디서 경험하거나 본 거 같지 않으세요? 어떤 사람을 알아갈 때 그 사람의 글과 생각, 요즘 읽고 있는 책, 좋아하는 음악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아보지는 않으셨나요? 만약 'Yes'라고 대답하시고 당신이 대한민국에 사는 40대 미만의 나이를 갖고 계시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일촌이셨습니다'. (마치 you activated my trap card라고 말하는 거 같네요. -_-;)
<추억의 개그 개그 개그...>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한국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싸이월드. 이전의 블로그, 뛰어난 html 스킬을 가지고 있던 마법사들만 가지고 있던 홈페이지 대신 싸이월드는 나만의 공간이자 친구와 소식을 공유하는 '미니홈피'로 한국 웹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생일선물 대신 도토리 선물, 한번 쯤 다 해보셨지요? ^^ 저의 경우도 대학 와서 처음 싸이월드를 접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인 경험들이 떠오르는데요.

  1) 모든 학교 모임, 프리젠테이션 조모임, 스터디 모임은 싸이월드에서 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과의 비밀의 장도 싸이월드에 열었던 기억이 나네요. 가입한 클럽만 수십 개..그러다 보니 잘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있어 보이려고 가입한 클럽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수유너머, 좌변기 등 때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사변적인 담론들이 오가는 장들도 그냥 가입만..)

  2) 모든 뒷조사는 싸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_-; 어떤 경로를 사람을 처음 알게 되면 집에 가서 싸이부터 했지요. 그 사람의 성향, 기호, 생각들을 알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기 훨씬 쉬웠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낯가림이 있는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 method로 싸이월드는 참 효율적이었습니다. (물론..그 안에는 '멀리 지켜만 보는 사람'의 근황 파악도 해당되겠죠? 싸이월드가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함!)

  그런데 싸이월드를 지금도 쓰시나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10대라면 '그렇다'고 하시겠지만 20대 이상이라면 그렇지 않으실 겁니다. 실제로 코리안클릭 2012년 4월에 의하면 싸이월드의 순방문자는 1,735만 정도로 5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월에 2,150만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하락폭이 크고 작년 이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죠. ("싸이월드 어쩌나…페이지뷰 4분의 1로 폭락" http://news.zum.com/articles/2257199) 한 때 '싸이중독'이라는 신조어를 양산하며 대단한 PV와 UV를 자랑하던 싸이월드,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 답을 영화 '건축학개론'과 함께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복잡해진 승민이'입니다. 건축학개론의 남자주인공인 승민은 원래 짝사랑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좋았죠. 심지어 상대방이 자신과 친한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짝사랑을 멈추지 못합니다. 원래 그렇게 사랑은 심플했을 때 가장 강력합니다. 그러나 기차여행 가서 뽀뽀 한번 하고 났더니 마음만큼이나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감정이 복잡해졌죠. 때문에 서연이 술을 먹고 남자 선배의 부축으로 집에 들어갔을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절망한 거죠. 마음이 너무 복잡해진 겁니다.
<영화에서 제일 압권인 장면 "꺼져줄래?">

 싸이월드는 어떨까요? 싸이월드의 핵심은 '개인화된 공간'과 '일촌'이었습니다. 도토리로 구성할 수 있었던 스킨, 음악 등은 수익성에 있어서도 강점이었습니다. 일촌평은 쉬운 네트워킹이 가능했던 효과적인 도구였죠. 그러나 거기에 '스티커'나 '폰트' 등 수익성을 위한 추가적인 상품들이 들어가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UI가 지저분 해지기 시작한 거죠. 특히 소셜 네트워크 초기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유명인들의 미니홈피는 팬들의 낙서장이 되었습니다. 이를 파악한 싸이월드에서 뒤늦게 댓글, 스티커 등을 옵션으로 둘 수 있게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그렇게 개인화된 공간이 황폐해지고 자연스레 일촌들의 발걸음이 떠나면서 싸이월드는 핵심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여전히 강북 사는 승민이'입니다. 영화에서 정릉이라는 공간은 멀리서만 바라보던 서연을 승민 옆에 위치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둘은 정릉에서 개포동 가는 버스를 함께 타고 가서 과제를 하고, 정릉에 있는 주인 없는 집에서 추억을 쌓으며 빠르게 가까워 집니다. 그러나 서연이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강북을 사는 승민은 예전 서연과 가지고 있던 공감대를 상실했고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물론 영화에서 이것은 승민이 가지고 있던 일종의 자격지심이었죠)
<저럴 경우 100% 마음은 콩 밭에>

  싸이월드도 한동안 강북에 살았습니다. (오해금지! 이하에서 강북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영화 속 승민의 자격지심과 궤를 같이 합니다) 2010년 3월 모바일 어플을 출시했지만 이것은 이미 시장에서의 불만이 터져나온 지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캐즘이론으로 생각한다면 싸이월드의 성공요인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신제품과 완전완비제품으로 결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찍은 사진파일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이 필요했던 소비자 니즈에서 성장했는데 싸이월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의 활용도가 점차 떨어지던 때에도 싸이월드는 2008년 핸드폰을 이용한 사진, 동영상 공유기능을 제공했지만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즉, 제품이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가 캐즘에 빠져 있었던 거죠. (글로벌 공략 실패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남으로 가버린 소비자를 멀리서 바라보던 싸이월드는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셋째, '첫사랑은 실패한다 생각한 승민이'입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첫사랑 서연과 조우한 승민은 제주도에 서연의 집을 짓게 됩니다. 쿨한 척 했지만 서연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었죠. 그리고 숨겨진 진실(여기서부터 스포임!), 서연 역시 승민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승민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요? 서연과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입맞춤은 '뜨거운 안녕'이 되었죠. 여전한 사랑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론이 되었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모든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전제를 깨고 싶지 않았던 감독의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승민 역시 무의식 중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제를 깔고-
<엄태웅의 연기력은 극적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데 이런 평범함은 견디질 못하는듯>

  싸이월드 역시 뭔가 여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국내 시장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던 2011년 10월, 싸이월드는 '글로벌 공략'을 선언합니다. ("원조 SNS, `글로벌 싸이월드`로 세계 시장 공략" http://www.etnews.com/news/contents/public/2519349_2572.html) 작금 싸이월드의 어려움이 글로벌 공략에 성공하지 못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글로벌 앱을 출시하며 이런 전략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오히려 싸이월드는 새로운 포지셔닝을 위해 세분시장을 더욱 세분화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기존 20대 여성이라는 핵심고객의 이탈이 심화되는 시점에서 글로벌 공략은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차라리 UV 구성에서 여전히 10대가 두드러지는 것을 활용, 10대의 활동성을 강화할 수 있는 포지셔닝 전략을 시도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은 내려졌고, 출시된 글로벌 앱은 별 피드백이 없으며, 올해 2월을 기점으로 네이트의 검색점유율 또한 구글에게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점은 '누군가의 일촌이었던' 저로서도 매우 아쉬운 점입니다. 국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당당히 성장하길 바랬는데. 이제 그저 싸이월드 역시 소비자에게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까요? 아니면 건축학개론과는 다르게 반전을 이루며 다시 소비자의 곁으로 돌아올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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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화 아티스트가 소셜 네트워크 마케터에게 주는 교훈 해리요셉과 비밀의 [웹]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27일 끝났습니다. 디파티드 등으로 잘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휴고'와 21세기 첫 무성흑백영화인 '아티스트'의 접전이 예상됐었는데요. 결과는 '휴고'가 촬영, 미술, 시각효과, 음향, 음향편집 등 5개 부문 수상을 했고, '아티스트'가 최우수작품, 감독, 남우주연, 음악, 의상상의 5개 부문 수상을 함으로써 동점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최우수작품, 남우주연, 감독상 등 주요 부문 수상을 '아티스트'가 했기 때문에 사실상 승자는 확실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두 작품 다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영화', '복고와 향수' 등의 키워드를 낳기도 했습니다.

 
  저도 아티스트를 CGV에서 봤습니다. 상암 CGV에서는 '무비꼴라쥬'라는 상영관을 운영하면서 이런 작품들을 자주 상영하는데요.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기 전인 지난 19일에도 역시나 상영을 해서 아주 즐겁게 봤습니다. 끝나고 나서 전국 100개 관으로 확대가 되었다는데 가까운 곳에 상영관이 있는지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

  아티스트를 보며 제가 느낀 키워드는 '결여(absence)'였습니다. 결여는 사전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람'이라는 뜻인데요. 그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가 '무성흑백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나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가 유성컬러영화를 보고 자라난 세대일 것입니다. 무성영화는 아예 보지도 못했고 흑백영화는 가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에서나 보는 것이 다였죠. 물론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찾아서도 많이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세상을 흑과 백으로 보는 일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모두가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소리가 나지 않는 영화라니요- 4 way 서라운드 시스템이라는 웅장한 사운드가 없이는 4D 영화도 불가능 했던 바, 이 영화는 여러가지가 시대와 결여된 채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가 가진 강한 몰입도는 바로 이 '결여'에서 비롯된 '상상'입니다. 모든 감각을 다 채우지 않고 비워줬을 때 관객은 비로소 주체적으로 콘텐츠와 소통합니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린다고 비난을 듣던 무성영화 배우들은 관객의 머리 속에서 각기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 목소리는 하나도 같지 않고 그 내용도 각자 다 다를 것입니다. 물론 내용이 자막을 통해서 정확하게 전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은 흐름 속에서 관객도 스토리텔러로 내용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마케팅 및 PR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명확한 교훈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또 하나의 채널이 되서는 안됩니다. 또한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정보 혹은 광고를 전달해주는 것이 이 채널의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이나 PR은 3D, 4D 영화와 같습니다. 빽빽한 정보와 광고 및 이벤트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의 오감과 24시간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셜 네트워크를 그저 기존 채널의 연장선 혹은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군인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효과적 채널 정도로만 여기기 쉽습니다. 이것은 아래와 같은 점을 놓치는 것입니다.

  첫째, 또 하나의 채널로만 생각한다면 소비자에게 지루할 수 있습니다. TV, 라디오, 신문 등의 올드미디어를 비롯해 웹, 소셜 네트워크, 디지털 사이니지, 무선망 등 다양한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LG U+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오픈하는 대신 광고시청을 의무화 시켰죠
) 그리고 소비자의 24시간과 오감을 노리고 접근하는 각 기업의 타겟팅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IMC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최근 기업들은 사용자 경험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소비자는 '별 다를 것이 없는 정보'를 또 다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차별성 없는 정보는 지루할 뿐이지요. 그래서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정치 이슈에 대한 트위터 유저의 멘션 분석 결과 RT와 같은 공유보다는 그냥 '수다'에 가까운 멘션이 70%였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둘째, 가장 적합한 정보나 광고는 때로는 소비자를 폐쇄적으로(혹은 적대적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구글이 한국에서 가장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정보 수집'에 관한 건입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 제작과정이나 최근 쿠키게이트처럼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는 미처 허락하지 않은 정보를 필요로 했습니다. 당연히 소비자는 반발하고 정보 공개를 거부하게 됩니다. 물론 당장에는 검색을 해야 하는데 가장 잘 만들어진 구글을 안 쓸 수는 없겠죠. 다만 장기적으로 구글보다 조금 못한 검색 서비스가 나왔을 때는 미운 구글 대신 다른 서비스를 이로 인해 쓰게 될 것입니다. 타 IT업계도 이런 흐름에 동승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나 위키리크스에서 개발 중인 폐쇄형 소셜 네트워크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들은 개방적인 페이스북과 정보제한에 대한 자신을 숨기고픈 소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한 케이스였습니다.

  어느 보안기업의 트위터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2개의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1개의 페이스북 FP를 가지고 있었지만 트위터는 보안상식, 페이스북은 블로그의 내용을 링크만 걸 뿐이었죠. 그 안에서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궁금하게 할 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맥도날드의 프로모티드 트윗을 이용한 캠페인의 실패는 정밀한 타겟팅을 위해 키워드 광고 형식을 빌렸지만 의도치 않은 역풍을 맞은 케이스(
http://www.bloter.net/archives/93326)였습니다. 폐쇄적인 이야기가 공개적이 되었을 때 기업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알 수 있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정답은 감각 하나라도 더 만족시키기 위한 3D와 4D 영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아티스트'가 가지는 의미인 '결여(absence)'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소비자에게 한번이라도 더 전달하기 위해서 애를 쓸 때, 소비자로 하여금 한번이라도 상상하게 한다면. 소셜 네트워크 마케터가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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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해리요셉과 아즈카반의 [가치]


  [2]012년 새해가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여태껏 게으름으로 글을 쓰지 않다가 잠시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사이에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해리요셉과 아즈카반의 가치'라는 폴더는 만들어 두고 글을 쓰지 않아서 여기는 어떤 글을 쓰려는 지 알리고 싶었거든요. 사실 이 폴더에 들어갈 글들은 조금은 추상적인, 개인적인, 이상적인 글들 입니다. 20대 후반에 그리는 꿈과 같다고 할까요? ^^

  이전에 방송사에서 근무할 때 'VSP'라는 것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단순 행사에서 개념을 확장해 'Value Sharing Project'로 만들자는 당시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개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방송사에서 쓰지 않는 개념이어서 아쉽지만 그 개념이 제게 가르쳐준 바가 참 크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VSP를 모델화 하기 위해서 정책 초안을 만들면서 전 제 삶과의 연관성을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어릴 때 비전이라고 삼았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 결국 무엇을 가리키는 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그런 개념을 '가치를 공유한다'라고 한다는 단순한 지각도 얻을 수 있었죠. 그리고 그러한 일은 마음에 품는 것으로 되지 않고 건물을 올리는 설계(designing)처럼 치밀한 기획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이 때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가]치는 아직 사회에서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입니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lity)가 한동안 사회에서 대두되면서 기업마다 가치경영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요원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CSR 마케팅이 경영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수치적으로 표기하기 어려운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경영, CSR 마케팅은 그래서 명분 혹은 세금과 관련한 공제혜택 정도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실무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업도 한 때 트렌드를 타고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실제 소비자 가격이 타 제품에 비해 높거나 품질이 낮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그러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습니다만 커피 등 일부 품목에 한정되어 있어서, 사회적 기업의 성장이 쉽지 않은 시장환경이라는 부분에 대해 많은 분들이 긍정하실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 Harvard Business Review에 Potter 교수와 Kramer 교수가 함께 'Creating Shared Value'라는 개념으로 article을 하나 실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을 작년 12월에 열린 동아 지식포럼 기사(<동아일보> "한국기업 동반성장 갈길 멀어...CSR서 CSV로 진화해야")에서 접하고 pdf 원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차후 기회가 되면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겠지만, CSR의 한계에 대한 인식 및 개선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전 참 좋았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CSR 마케팅이나 사회적 기업, 정부가 기업에 지우는 공적 책임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고민들이 녹아 있습니다. 브랜드와 관련해 각 기업의 CSV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 개인에게는 CSV가 제 삶을 이어주는 슬기로운 줄이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추곡 이야기 디렉터, 나라로 들어가다 편집장 등 돈 안되는 일만 골라서 했고 회사에서도 뭔가 가치를 위해서 때론 에로배우(?)도 불사했었는데, CSV는 그런 가치지향적인 인간이 기업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접근은 브랜드 마케터가 되어 소비자와 공유하는 가치를 통해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소극적 구매집단(특정 브랜드만 구매하는 집단)'을 만들 수 있겠죠. 물론 제품 마케팅에서도 이 개념은 공유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미디어에서도 가능한데, 이 경우 콘텐츠보다는 편성전략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SBS가 최근 100개 학교를 5년간 아프리카에 짓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경영전략의 측면보다는 차후 콘텐츠 제작과 연계해서 생각했을 때 편성전략에 더 맞지 않나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거나 각 분야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다양하게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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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꼼수로 보는 라디오의 미래 1편 해리요셉과 [미디어]의 돌


  [이]제 와서 나꼼수를 말하는 것은 우스울 수 있지만, 해를 넘기기 전에 1편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진 까닭도 있는 것 같아요. =) 그래서 그런지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구속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조금 주춤하던 나꼼수가 다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최근 나꼼수 녹음실에서 정봉주 전 의원의 판데기(?)를 두고 3 사람이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었는데요.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을 전후해서 김어준 총수가 눈물 흘리며 도와달라고 했다는 사진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고 개신교계에서 큰 존경을 받는 목사님의 나꼼수에 대한 언급도 화제가 되며 나꼼수의 식지 않은 인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러한 나꼼수가 던진 메시지 자체보다 나꼼수를 가능케 했던 팟캐스트, 그리고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전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출처 : 김용민 트위터>

  다들 나꼼수에 대해서 풍자, 해학의 콘텐츠에 대해 많이 집중합니다. 실제로 나꼼수의 성공 후 S방송사는 개그맨을 중심으로 시사프로를 만들었죠. (여기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습니다) 허나 제가 생각하는 나꼼수의 진정한 매력은 미디어 시장 전체에서 올드 미디어라고 분류되어 사멸되는 분위기에 있던 라디오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팟캐스트가 있었지요. 그렇다면 정확히 나꼼수는 라디오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번 1편은 플랫폼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나꼼수는 한국에서 라디오의 청취자 중심 디지털 플랫폼을 정착시켰습니다. 팟캐스트 이전에 이미 모든 라디오 방송사는 웹라디오라는 웹 기반 청취수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디어가 한국보다 5년 정도 앞서 있는 미국 역시 2003년까지 10년 정도 웹라디오의 역사를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1년 RSS 파일의 주소를 공개하여 업로드 된 mp3 파일을 받는 형식이 개발되었고, 2004년 처음 아이팟에서 팟을 차용한 팟캐스트라는 term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2005년 중반 애플이 이 시장에 개입하여 팟캐처(팟캐스트를 수집하는 소프트웨어), 팟캐스트 디렉토리 발행자(아이튠즈 뮤직스토어), 퀵타임 프로(튜토리얼) 등을 제공하며 더욱 성장하게 되었죠.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사전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나꼼수가 시작되기 전에 국내 아이팟 유저들을 통해서 아이튠즈 내 팟캐스트의 존재가 알려졌고 이미 어느 정도 사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8년 말을 전후하여 각 방송사에서 이미 팟캐스트에 자사의 인기 프로그램(친한친구, 컬투쇼 등)을 경쟁적으로 업로드했었죠. 그렇다면 사실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을 나꼼수가 사용한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닌 셈입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플랫폼의 의미를 따진다면 방송사의 '공용 플랫폼'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조용호의 '플랫폼 전쟁'을 보면 공용 플랫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화면 크기나 내부 기기 설계, 버전 등이 각각 다른 기기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 즉,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팟캐스트는 자사의 방송을 청취할 다양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동일한 콘텐츠를 사용자에게 적합한 플랫폼에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나꼼수는 이러한 공용 플랫폼에서 한층 더 진보시켜 한국인에게 팟캐스트를 '양면 시장 플랫폼 사업자'로 인지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일한 책에서 양면 시장 플랫폼은 '일반 스마트폰 사용자와 운영체제 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 그리고 운영체제와 관련된 제조사, 주변 기기업체 등과 소통하면서 중간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능은 나꼼수가 존재하기 전에 functional하게 존재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꼼수는 이 정의를 다음과 같이 라디오 시장에서 적용시켰고 청취자에게 인지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반 스마트폰 사용자 뿐만 아니라 라디오 청취자들을 포함한 미디어 소비자와 콘텐츠를 제작하는 개인 혹은 집단, 그리고 생산된 콘텐츠를 둘러싼 사회조직과 정당, 정부 사이에서 가치를 제공한다'. 즉, 웹라디오 시절 수동적으로 방송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그냥 컴퓨터에서 듣던 청취자들이 이제는 콘텐츠 단위로 다운을 받아 청취하며 이 사용자 경험을 트위터 등 SNS로 적극적으로 공유하게 된 겁니다. 또한 나꼼수의 성공을 본받아 팟캐스트에는 '나는 일반인이다'를 비롯한 아류 방송이 파생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한 정당에서는 나꼼수 적대방송(?)인 '너는 꼼수다'를 제작하기도 했죠. 다양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나꼼수를 전후로 팟캐스트에 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디어 소비 행태에서 단연 이전과 다른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소비자 중심 청취경향을 나꼼수가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나꼼수는 다시 미디어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1997년 10월 15일 뮌헨에서 개최된 BLM-방송사협의회 때 열렸던 아돌프 그림메 아카데미 세미나의 발표를 담은 책인 '방송 프로그램 편성'은 50%의 이야기를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채널 선택에 있어서 방송사의 이미지는 전통적으로 높은 중요도를 차지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중 3사 방송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이미 햇수로도 오래되었죠. 그러나 한동안 방송사에서는 시청률이라는 단순한 평가지표 때문에 트랜디한, 이슈가 될만한, 흥미로운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뉴스에 의하면 PD들 중 시청률을 프로그램에 대한 잣대로 보지 않는 인원이 90%가 넘더군요. 이 때문에 각 공중파 방송사들은 통일한 브랜드 이미지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꼼수를 비롯한 팟캐스트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오늘 SNS를 통한 선거운동 규제는 위헌이라는 헌법제판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 크죠. 이는 SNS 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내에서 발언의 자유가 당분간 허락될 것으로 보이는 제도적 안전장치입니다. 더불어 무선통신사 간 경쟁이 과열양상으로 치닫으면서 기존 3G, Wifi뿐만 아니라 4G를 통해서 보다 원활한 무선통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LG유플러스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3G, Wifi 시장에서의 포지셔닝이 약한 제 3사업자로써 오늘 국내 최초 전국 84개시 LTE 서비스 커버리지를 개통했다고 발표했죠. 이는 고속도로와 KTX 등 주요 교통망을 포함하는 사업이라 통근이나 이동 시 라디오 청취경향이 강한 한국인에게 팟캐스트, R2라디오 같은 디지털 플랫폼 사용빈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양한 개인-집단의 팟캐스트 시장 진출은 더욱 가속화되고 다양화될 것입니다. 유튜브 열풍처럼 곧 식을 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나꼼수가 유튜브의 많은 아마추어들과는 다른 전문가 집단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강정수 연세대 연구원)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구별할 수 있는 힘 혹은 기준이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꼼수에 이은 '나는 꼽사리다'의 성공적 정착 역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나꼼수의 경제판이라는 개념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나꼼수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잘 적용한 케이스로,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는 다양한 콘텐츠 수요를 종합편성을 통해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공중 3사와는 다르게 타겟과 수요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팟캐스트 콘텐츠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나는 꼽사리다'처럼 팟캐스트 내에서도 정확한 타겟과 수요를 바탕으로 통일된 브랜드를 가지는 자가 승자가 될 것이고, 이어 디지털 플랫폼의 사용빈도가 높아진 가까운 미래의 라디오 시장에서도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나꼼수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 역시 이 브랜드 이미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데요. 현재까지 나꼼수가 형성한 브랜드 이미지는 '믿을 수 있는(조선일보보다 높은 신뢰도)', '재미있는(정치의 풍자적 재해석)' 같은 것이 있는데요. '믿을 수 있는'에 관해서 나꼼수는 사실 정부나 가카가 가진 신뢰도를 반박하면서 뺏은 것이나 진배없죠. 그리고 문제는 그런 나꼼수 역시 이 신뢰도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물론 디도스 공격에 대한 의혹 제기가 성공을 거두면서 현재까지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나꼼수의 진정성을 검증받는 시간을 겪게 될 겁니다. 옛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걸었던 국민의 희망이 현실 속에서 비난이 된 것처럼 현실 속에 그들의 브랜드가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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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기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루시드폴 5집 '아름다운 날들' 해리요셉과 [머그컵]


 
  [가]을과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루시드폴의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3월에 출시된 2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루시드폴 앨범은 11월~2월 사이에 발매가 되었네요. 안테나뮤직의 의도가 담겨 있을까요 아니면 루시드폴이 아니라 원래는 루시드윈터 였을까요. 흐흐. 어쨌거나 좋은 앨범이 2011년 마지막에 많이 나와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앨범에 대한 리뷰는 방송작가인
김성원씨가 쓴 공식리뷰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이만큼 전문적이지도 않고 그냥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다 보니, 이 글이 무척 주관적이고 비전문적일 수 있음을 먼저 알려드려야 할 것 같네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인생 최고의 영화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로베르트 베니니가 연기했던 슬프지만 유쾌했던 '귀도'의 오마주는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희화화했던 포스트-찰리 채플린으로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네요. 1000점을 채우면 탱크를 선물로 준다는 귀도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아들 조슈아의 앞에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난 탱크, 그 아이에게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그렇게 'Life is Beautiful'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모두에게 때로는 참람한 현실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저는 귀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스위스 공학박사 출신으로 미국에 특허출원까지 낸 과학자 조윤석이 아닌, 음악인 루시드폴의 노래는 귀도처럼 유쾌하지만 쓸쓸합니다. 먼저 앨범의 구성이 유쾌하며 쓸쓸합니다. 이번 앨범은 루시드폴로서는 파격적인(?) 리듬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리고 눈이 내린다'에서는 삼바를, '어부가'에서는 쿠반을 통해 그동안 그가 들어왔던 음악들을 자신의 노래로 부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추운 겨울 햇빛이 들어오는 한가한 오후, 설거지를 도와주는 기분 좋은 유쾌한 곡들도 있는 반면, '어디인지 몰라요'나 '그 밤'처럼 루시드폴을 들었을 때 느끼는 졸림을 주는 곡들도 있습니다(사실 전체 구성에서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긴 합니다). 기타 일변도의 음악에 비해 확실히 구성에 있어 다양해진 측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음악에의 전념을 선언한 2009년 초 이후에 나온 앨범들은 이처럼 미선이 시절, 버스정류장 시절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적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미묘한 곡 속의 부조화가 유쾌함과 쓸쓸함을 야기합니다. 삼바 리듬을 즐겁게 사용한 '그리고 눈이 내린다'가 대표적인데, 흥겨운 곡 분위기에 반해 가사는 현저히 쓸쓸합니다. 당연히 이런 노래를 들으면 청자는 두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그런 부조화를 처음부터 쉽게 느끼지는 않지만, 점차적으로 그 감정에 적응하게 되죠. 이별 후의 감정처럼 말입니다. 밉지만 그리운, 아름답지만 처절한, 아프지만 감사한- 이별 후의 감정이 여름과 겨울을 반복한다고 묘사했던 한 영화의 장면처럼 말이죠.

참 좋아라 했던 / 이 길 위엔 아무도 없는데
밤은 정말 이렇게 / 나도 모르게 /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어

날 보듬어 주던 / 그 눈빛은 사라졌지만
푸르고 푸르던 기억 / 아직도 향기로 남아 / 눈짓으로 인사하는구나

외롭다는 건 / 기다리는 것
잊혀지는 게 / 아무렇지 않도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 하루 또 하루가 지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까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 하지만 이 밤이 지나면
하늘은 밝아올 테고 / 거리는 분주할 테고 /
내 마음도 조금씩 환해질 거야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 하지만 견디다 보면
여름은 다시 올 테고 / 겨울엔 눈이 올 테고 /
나는 다시 빛날 수 있겠지

<그리고 눈이 내린다, 루시드폴 5집>

  [아]름다움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요? 사전적으로 아름다움이란 첫번째로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조화이루어 즐거움만족 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하는 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인지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면 두번째는 보다 감정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나 루시드폴의 '아름다운 날들'은 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인지와 감정이 분절된 구조가 아니라 통합적 구조로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귀도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아들 조슈아'였습니다.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수용소에서의 현실은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슈아가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에(감정) 총살을 당하러 끌려가는 장면에서도 쾌활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마저도 아름답게 인식하는 거죠(인지).

  루시드폴의 노래에서 아름다움이란 아마 '누군가'일 것입니다. 루시드폴은 곡들의 제목에서는 타이틀인 '아름다운 날들'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트랙인 '여름의 꽃'에서 가사로 표현했죠. '안녕 / 안녕 / 아름다운 날들' 마치 일본 영화의 OST를 연상케 하는 스트링이 지배적인 이 곡은 사랑이 끝난 시점에서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별은 유쾌할 수 없기에 이 즐겁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아름다움이 관계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인지)이 현재의 느낌(감정)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일 수도 있죠. 
 
  이 아름다움을 판단함에 있어 상대방의 동의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귀도는 조슈아에게 인생을 알려주며 자신의 부재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이별을 아름다움으로 정의하는 노래의 화자도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진 않았죠. 아름다움은 그렇게 동의 없이 구하는 것이며 어쩌면 철저히 이기적인 관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을 에는 것 같은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도 성큼 다가왔네요. 모쪼록 글을 읽는 분들께서 다소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오늘을 이기적이라도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이 시즌을 보내실 수 있길 기도합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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